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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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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에 벌어진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 명칭: 말비나스 제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무력 분쟁이다. 아르헨티나는 1833년 영국의 무력 점령 이후 지속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1982년 4월 군사 정권이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해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영국은 이에 대응하여 군사적 조치를 취했고, 74일간의 전투 끝에 영국이 승리했다. 이 전쟁은 대함 미사일의 위력, 물류 지원의 중요성, 전술 항공력의 역할 등 현대전의 교훈을 제시했으며,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의 붕괴와 마거릿 대처 정부의 지지 상승 등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 국제 협력의 중요성, 자주 국방의 필요성 등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역사적 배경

1690년 영국인 존 스트롱이 포클랜드 제도에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 1764년에는 프랑스 왕국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처음으로 정착민을 데려와 살게 했다. 1766년 프랑스 정착민들은 이 섬의 통치 권리를 스페인에 팔았고, 이후 50년간 영국과 스페인은 섬을 나누어 통치했다.

1766년, 영국인들은 프랑스 정착촌의 존재를 모르는 채로 영국 정착촌을 세웠다. 이후 스페인과 영국은 1771년 전쟁 위기까지 겪었다. 영국은 1774년, 스페인은 1811년에 각각 경제적인 이유로 철수했고, 이후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

1828년 아르헨티나는 독일인 상인을 대리인으로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독일인 상인이 불법적으로 어선을 나포하고 해적질을 하자, 미국 해군 함선 렉싱턴 호가 그의 기지를 포격하여 파괴했다.

푸에고 섬의 원주민인 야간족이 포클랜드 제도를 최초로 발견했다고도 한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에 의한 발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1520년 포르투갈마젤란 함대의 에스테반 고메스에 의해서였다는 설과 1592년 영국의 탐험가 존 데이비스에 의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자를, 영국 정부는 후자를 채택하고 있다.

포클랜드 제도는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비글 해협드레이크 해협에 인접해 있고, 파나마 운하 개통 전까지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18세기에는 영유권 분쟁의 무대가 되었다. 1764년 프랑스는 동 포클랜드 섬에 정착하여 생 루이 항(현재의 버클리만)이라고 명명했다. 1765년 영국의 존 바이런 함장은 서 포클랜드의 손더스 섬 항구를 에그몬트 항이라고 명명했다. 스페인 부르봉 왕조는 1767년 프랑스로부터 포클랜드 제도를 매입했고, 1770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그몬트 항으로 침공했다. 당시 북미 식민지의 정세가 급박해 대처해야 했던 영국은 전면전을 피했다.

2. 1.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말비나스'라고 부르며,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 섬을 승계했다고 주장했다.[301] 1826년에는 이 섬의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된다고 공식 선언했다.[301]

1946년 후안 페론 정권은 이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했다.[301] 1965년 유엔 총회는 식민지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결의 2065/XX)를 채택했으나, 영국계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포클랜드 제도 주민들은 아르헨티나의 지배를 반대했다.[301]

1973년 아르헨티나는 다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유엔 결의에 따라 영국과 협상을 시작했지만, 1982년 협상이 결렬되자 '다른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며 갈등이 격화되었다.[301]

2. 2. 영국의 실효 지배와 협상

영국은 1833년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주변 해역의 안전 보장을 위해 전함을 보내 포클랜드 제도를 군사력으로 점유했다.[9] 그 후 100여 년 동안 영국이 이 섬을 지배했다.

1965년 국제 연합은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영토분쟁에 대해서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9] 영국 외무 연방 개발부(FCO)는 포클랜드 제도가 남아메리카에서 영국 무역에 대한 골칫거리이자 장애물이라 여겼고, 아르헨티나에 섬들을 양도할 준비까지 했었다.[9]

1973년 아르헨티나가 이 섬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평화적인 해결을 권고한 유엔 결의에 따라 1973년부터 영국과 협상을 시작했다.[9]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하겠다고 공식 선언한다.[9] 1982년 4월,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한 후 짧게나마 점령에 성공했다.[9]

3. 전쟁의 발발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내부 문제를 외부 위기로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포클랜드 제도 침공을 결정했다.

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이 포클랜드 제도 동쪽의 영국령 사우스조지아 섬에 두 차례 기항하여, 민간인으로 위장한 해병대원을 무단 상륙시켰다.[23]

이에 영국은 쇄빙 경비선과 해병대원을 파견하고, 아르헨티나 군부대 철수를 조건으로 외교 협상을 제안했으나, 아르헨티나는 강경한 자세를 취해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졌다. 미국의 중재와 수뇌 간 전화 회담도 실패했다.

4월 1일 심야부터 아르헨티나군의 포클랜드 제도 침공이 시작되었고, 4월 3일에는 사우스조지아 침공이 이어졌다. 영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4월 2일 침공 이전에 이미 조치를 취했다. 3월 29일, 사우스 조지아 사건에 대응하여 각료들은 왕립 함대 보조함 (RFA) ''Fort Austin''을 지중해에서 남쪽으로 파견하여 HMS ''Endurance''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지브롤터에서 핵 추진 잠수함 HMS 스파르탄과 다음 날 스코틀랜드에서 HMS 스플렌디드를 남쪽으로 파견하라고 명령했다.[32][33] 캐링턴 경은 세 번째 잠수함 파견을 원했지만, 작전 수행 영향에 대한 우려로 결정이 연기되었다.[33]

마거릿 대처 총리 주재 위기 회의에서 해군 참모 총장 헨리 리치 제독은 "영국은 섬이 침공당할 경우 기동 부대를 파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조언했다. 4월 1일, 리치는 지중해에서 훈련 중이던 영국 해군 부대에 남쪽으로 항해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월 2일 침공 이후, 내각 긴급 회의에서 섬 탈환을 위한 기동 부대 구성을 승인했고, 이는 다음 날 영국 하원 긴급 회의에서도 지지받았다.[35]

침공 소식은 아르헨티나 측에서 처음 영국에 전달되었다.[36] 런던 국방부 요원은 헌트 총독의 텔렉스 운영자와 짧은 텔렉스 대화를 나누었고, 아르헨티나인들이 섬을 통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36][37] BBC 기자 로리 마골리스는 아마추어 무선을 통해 구스 그린의 한 섬 주민과 대화하여 아르헨티나 대규모 함대 존재와 아르헨티나군 점령을 확인했다.[36]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군사 작전은 ''작전명 코퍼레이트''라는 암호명이 부여되었고, 기동 부대 사령관은 존 필드하우스 제독이었다. 작전은 1982년 4월 1일부터 1982년 6월 20일까지 진행되었다.[38]

4월 6일, 영국 정부는 캠페인에 대한 일상적인 정치적 감독을 제공하기 위해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39] 이는 영국의 위기 관리 핵심 도구였으며, "남대서양 관련 정치적, 군사적 전개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국방 및 해외 정책 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 전시 내각은 8월 12일 해산될 때까지 최소 매일 회의를 열었다.

3. 1. 아르헨티나의 침공 배경

1960년대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정치 투쟁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졌다.[21] 이러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군사정권은 민족주의적 문제인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제도)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21]

1981년 12월,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호르헤 아나야 제독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을 지지했으며, 영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19][20]

갈티에리 정부는 군사적 행동을 통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경제 문제와 더러운 전쟁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했다.[21]

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 해병대가 침투한 아르헨티나 고물상 그룹이[23] 사우스조지아 섬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게양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영국은 이에 대응하여 해군 쇄빙 순찰선을 파견했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영국이 남대서양 전력을 증강할 것이라고 의심하여 포클랜드 제도 침공을 4월 2일로 앞당기도록 명령했다.

3. 2. 영국의 초기 대응

마거릿 대처 총리는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레오폴도 갈티에리와 맞서 싸우도록 엘리자베스 2세를 설득했고, 결국 포클랜드 전쟁은 승인되었다.[35] 입헌군주제에서 총리가 사실상의 군주이며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의 영국군은 작전 계획으로 어센션섬에 전초기지를 구축하고 여기서 해군 함대를 출항시키면서 물자를 보급받았다.

영국 기동 부대의 기함인 HMS 허미즈를 묘사한 1982년 4월 19일자 ''뉴스위크'' 잡지 표지. 제목은 1980년 ''스타워즈'' 속편을 연상시킨다.


영국은 1982년 4월 2일 침공 전에 이미 조치를 취했다. 1982년 3월 29일, 사우스 조지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응하여, 각료들은 왕립 함대 보조함 (RFA) ''Fort Austin''을 지중해에서 남쪽으로 파견하여 HMS ''Endurance''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지브롤터에서 핵 추진 잠수함 HMS 스파르탄과 다음 날 스코틀랜드에서 HMS 스플렌디드를 남쪽으로 파견하라고 명령했다.[32][33] 캐링턴 경은 세 번째 잠수함을 파견하고 싶어했지만, 작전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로 결정이 연기되었다.[33]

마가렛 대처 총리 주재의 위기 회의에서 해군 참모 총장인 헨리 리치 제독은 "영국은 섬이 침공당할 경우 기동 부대를 파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조언했다. 4월 1일, 리치는 지중해에서 훈련을 수행하고 있던 영국 해군 부대에 남쪽으로 항해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월 2일 침공 이후, 내각의 긴급 회의를 거쳐 섬을 탈환하기 위한 기동 부대 구성을 승인했다. 이는 다음 날 영국 하원의 긴급 회의에서도 지지받았다.[35]

일부 선진 그룹, 페넌트 번호가 덧칠되었으며, 1982년 3월 지브롤터에서


침공 소식은 아르헨티나 측에서 처음 영국에 전달되었다.[36] 런던의 국방부 요원은 헌트 총독의 텔렉스 운영자와 짧은 텔렉스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섬에 있으며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36][37]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군사 작전은 ''작전명 코퍼레이트''라는 암호명이 부여되었고, 기동 부대 사령관은 존 필드하우스 제독이었다. 작전은 1982년 4월 1일부터 1982년 6월 20일까지 진행되었다.[38]

1982년 4월 6일, 영국 정부는 캠페인에 대한 일상적인 정치적 감독을 제공하기 위해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39]

4. 전쟁의 경과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로사리오 작전을 발동하여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다. 이에 영국은 센토급 항공모함 "허미즈"와 인빈시블급 항공모함 "인빈시블"을 주축으로 하는 기동 부대를 편성하여 반격에 나섰고, 4월 5일 포츠머스에서 출항했다.

영국군은 4월 25일 파라켓 작전을 통해 사우스조지아 섬을 탈환했다. 특수 공수 부대(SAS)와 특수정찰대(SBS)를 투입하여 아르헨티나군을 제압하고 섬을 탈환했다.

5월 21일, 영국군은 서튼 작전을 개시하여 샌 카를로스에 상륙, 교두보를 확보했다.

4. 1. 해상 전투

영국 해군은 핵잠수함 컨커러를 파견하여 1982년 5월 2일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를 격침시켰다. 헤네랄 벨그라노는 원래 미국 해군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피닉스로 제2차 세계 대전 전인 1938년에 취역한 구식 함이었으나, 강력한 함포장갑을 갖추고 있어 영국군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교전 규정(ROE) 변경 후, 컨커러는 5월 2일 18시 57분(UTC)에 헤네랄 벨그라노의 좌현 함수 1,400 야드에서 Mk8 어뢰 3발을 발사했고, 이 중 2발이 명중하여 헤네랄 벨그라노는 격침되었다.[305] 이 공격으로 321명이 전사하고, 850명이 구조되었으며, 민간인 2명도 사망했다.

공중 급유 중인 쉬페르 에탕다르 (아르헨티나 해군 소속기). 포클랜드 전쟁에서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을 탑재하여 영국 해군 함정에 피해를 입히면서 엑조세 미사일과 함께 세계에 그 이름을 알렸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이에 대응하여 엑조세 미사일을 사용하여 반격에 나섰다. 5월 4일 14시(UTC), 아르헨티나 해군의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 2기가 엑조세 AM39 공대함 미사일을 발사하여 영국 구축함 셰필드를 공격했다. 2발 중 1발의 미사일이 셰필드에 명중하여 큰 화재가 발생했고, 소화 활동이 불가능하여 결국 함선은 침몰했다.[306] 이 공격으로 승무원 260명 중 2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고, 24명이 부상당했다.

헤네랄 벨그라노 격침 이후, 아르헨티나 해군의 수상함들은 현존함대주의 전략을 취하며 더 이상 출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해군의 209급 잠수함 "산 루이스"는 포클랜드 제도 북방 해역에서 활동하며 영국 해군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다.[320]

4. 2. 공중전

영국은 시 해리어 FRS.1 함상 전투기를 투입했고, 아르헨티나 공군은 미라주 III EA 전투기 등을 투입하여 제공권 확보를 위한 공중전을 벌였다.

5월 1일, 영국 공군의 아브로 벌컨 전략 폭격기가 블랙 벅 작전을 통해 스탠리 비행장을 폭격하여 아르헨티나 공군력을 약화시켰다.[46] 같은 날, 허미즈의 시 해리어는 스탠리 비행장을 공격했고,[47] 인빈시블은 함대 방공을 위한 전투 초계를 담당했다.[47] 오후 늦게부터 공중전이 본격화되면서, 시 해리어 2기가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라주 III EA 전투기 2기와 교전하여 미라주 1기를 격추하고, 1기는 불시착을 시도하던 중 아군에게 오사되어 격추되었다. 또한 아르헨티나 공군의 다거 공격기 2기가 시 해리어와 교전하여 다거 1기가 격추되었고, 캔버라 폭격기 3기가 시 해리어와 교전하여 캔버라 1기가 격추되었다. 이들 격추는 모두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에 의한 것이었다.[47]

블랙 벅 작전으로 스탠리 비행장이 폭격당한 이후, 아르헨티나 본토에 대한 폭격을 경계하여 미라주 IIIEA는 본토 방공을 위해 억류되었다.[47] 아르헨티나 공군은 미라주 III와 다거와 같은 마하 2급 제트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포클랜드 제도의 항공 설비는 빈약하여 초음속기의 배치는 어려웠다.[47] 이러한 기체는 본토 기지에서 멀리 날아와야 했고, 공중 급유 능력이 없어 전장에서의 체공 시간이 제한되었다.[47]

영국 해군의 시 해리어는 총 6기(사고 4기)를 잃었지만, 공중전에서의 손실은 없었고, 아르헨티나 기와의 공중전에서 23기를 격추했다.[47]

4. 3. 지상전

영국군은 1982년 5월 21일, 샌 카를로스에 상륙하여 서튼 작전을 개시했다. 아르헨티나군은 패닝 헤드에 감시 초소를 두었으나, 영국군 특수부대(SBS)와 함포 사격으로 격파되었다. 영국군은 큰 저항 없이 교두보를 확보했다.

구스 그린 전투에서 영국군 제2공수대대는 아르헨티나군 제12연대를 격파하고 구스 그린과 다윈을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 지휘관 허버트 존스 중령이 전사했지만, 영국군은 승리했다.

켄트 산 전투에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군 코만도 부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켄트 산을 점령했다. 이로써 스탠리 공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스탠리 외곽 방어선 전투에서 영국군은 롱던 산, 해리엇 산, 투 시스터스 산을 차례로 점령하며 아르헨티나군을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은 함포 사격과 근접 전투를 통해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돌파했다.

스탠리 내곽 방어선 전투에서 영국군은 텀블다운 산, 와이어리스 릿지, 윌리엄 산을 점령하며 스탠리로 진격했다. 아르헨티나군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결국 1982년 6월 14일 항복했다.

5. 국제 사회의 반응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주장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연방 국가들은 대체로 영국의 영유권을 인정했지만, 카리브 공동체 국가들은 최근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355][356] 유럽연합은 포클랜드 제도를 회원국의 특수해외영토로 간주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예외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359]

페루는 아르헨티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전쟁 중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357] 메르코수르(MERCOSUR),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등 중남미 국가들과 국제기구들도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며, 칠레아우구스토 피노체트 퇴임 이후 아르헨티나 지지로 돌아섰다.[357][358]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 입장을 유지했지만,[360] 전쟁 중 영국에 물자와 정보 지원을 제공했다.[360] 중화인민공화국은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359]

5. 1. 영연방 국가들의 반응

영연방 국가들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였다.[355][356] 그러나 이들 중 카리브 공동체 국가들은 최근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지지함을 밝혔다.[355][356]

5. 2. 유럽 연합의 반응

유럽연합은 포클랜드 제도를 회원국의 특수해외영토로 간주하고 있다.[355][356] 스페인은 유럽연합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359] 이는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 및 유럽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겪는 외교 정책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221]

스페인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502 투표에서 기권했으며, 스페인 유엔 대표 하이메 데 피니에스는 결의안이 탈식민지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228] 전쟁 기간 동안 스페인의 입장은 다른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 및 포르투갈의 입장과 대조적이었다.[222][223]

5. 3. 중남미 국가들의 반응

페루는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말비나스 제도) 영유권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포클랜드 전쟁 중 물자 지원을 했다.[357] 페루는 전쟁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에 미라주 전투기, 조종사, 미사일을 공개적으로 보냈으며,[203] 스트렐라-2M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 40기와 사용 훈련을 위한 조작자 3명을 지원했다.[204] 또한, 1982년 4월 영국 해상 부대가 출항한 직후 허큘리스 수송기 10대를 아르헨티나에 이전했다.[205]

메르코수르(MERCOSUR),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과 같은 중남미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은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357] 비동맹 운동 회원국들 또한 아르헨티나를 지지했는데, 특히 쿠바니카라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비동맹 국가들을 아르헨티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199]

칠레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을 지지했지만,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퇴임 이후에는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357][358] 칠레는 비글 해협의 지배권을 두고 아르헨티나와 협상 중이었고, 아르헨티나가 유사한 전술로 해협을 확보할 것을 우려했다.[207] 칠레는 전쟁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군의 정보와 아르헨티나 공군의 조기 경보 정보를 영국에 제공하며 영국을 지원했다.[208][209][210]

5. 4. 미국의 입장

미국은 1940년대 이래 공식적으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360]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 중에는 영국에 물자와 정보 지원을 실시했다.[360]

기밀 해제된 전문에 따르면, 미국은 마거릿 대처가 외교적 선택 사항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느꼈고, 장기화된 분쟁이 소련을 아르헨티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188] 미국은 처음에는 셔틀 외교를 통해 분쟁을 종식시키려 했지만,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평화 제안을 거부하자 알렉산더 헤이그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이 아르헨티나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하고 영국 작전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의회 양원은 영국을 지지하는 미국의 조치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189]

미국은 영국에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200발,[190][191] 8개의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하푼 대함 미사일 및 박격포탄을 제공했다.[192] 어센션섬의 지하 연료 탱크가 비어 있자, 미국은 2000000USgal의 연료를 섬의 저장 탱크와 그곳에 정박한 선박의 연료 탱크를 보충하기 위해 수퍼탱커를 전환했다.[193] 미국 국방부는 전쟁이 남반구의 겨울까지 이어질 경우 추가 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유럽에서 영국 공군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급유기를 투입하여 영국 공군 항공기가 포클랜드 작전을 지원하도록 했다.[194]

미국은 영국이 남극해의 잠수함과 영국 해군 본부 간의 안전한 통신을 위해 미국 통신 위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위성 사진(공개적으로 부인했지만[195])과 기상 예보 데이터를 영국 함대에 전달했다.[196]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영국 항공모함이 손실될 경우 해리어를 탑재할 수 있는 강습상륙함을 빌려달라는 영국 해군의 요청을 승인했다(미 해군은 이를 위해 을 지정했었다[197]). 미 해군은 영국의 해군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 계약자를 투입하는 계획을 개발했는데, 이들은 해당 선박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가진 퇴역 해군 장교들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198]

5. 5. 중국의 입장

중화인민공화국은 쿠데타를 일으킨 비델라의 중국 방문을 받아들이는 등,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몇 안 되는 공산주의 국가였으며,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국제 연합 총회 등에서 지지했다.[322] 1982년 9월 영국령 홍콩을 둘러싼 협상에서,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감을 얻은 마거릿 대처 총리에게 덩샤오핑은 "홍콩은 포클랜드가 아니고, 중국은 아르헨티나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대응하여 홍콩 반환이 결정되었다.[323]

2010년 7월에 중국은 2010년 4월에 발생한 외교 위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324] 2011년 12월과 2012년 6월에도 중국은 아르헨티나를 지지했고,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336]

2012년 7월, 아르헨티나의 브리첼리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력 전투기로 개발 중인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젠-20 구매를 언급했다.[336] 또한,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사이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에 대해 중국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336]

2015년 2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056형 호위함을 구매하여 '''말비나스급'''으로 명명하는 계획이 발표되었고[325][326], FC-1 전투기 및 VN-1 보병전투차 등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327][328][329] 또한, 이때 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승인된 파타고니아의 네우켄 주에 건설된 인공위성 추적 기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관할로 놓였으며[330], 비밀 조항도 포함된 50년 계약으로 부지를 임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주권 양도 및 중국에 의한 군사적 이용에 대한 우려를 야당 등이 제기하여 물의를 빚었다.[331][332][333] 이 기지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할 경우 위성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미국에서 제기되었다.[334] 이러한 합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에서 교체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권에서 수정 또는 중단되었지만, 중국의 목적은 제2차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르헨티나를 지원하는 것이었다고도 한다.[335]

이러한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협력 관계를 배경으로 한 영국 측 보고서에서는 "영국의 국방 예산 삭감으로 인해 포클랜드 방어가 약화되어, 중국으로부터 군사적 및 재정적 지원을 받은 아르헨티나군에 빼앗길 경우 탈환은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했다.[336]

6. 전쟁의 결과 및 영향

마거릿 대처와 알렉산더 헤이그의 런던 회담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겼다. 미국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이 중재에 나섰지만, 아르헨티나의 강경한 입장과 영국 내각의 타협 불가 분위기로 인해 실패했다.[60][61] 결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공개적으로 영국을 지지했다.[61]

영국군은 블랙 벅 작전을 통해 어센션 섬에서 벌컨 폭격기를 출격시켜 스탠리 비행장을 폭격했다.[75] 이 작전은 공중 급유를 동원한 장거리 폭격이었으며, 활주로에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아르헨티나군에게 본토 공격 가능성에 대한 위협을 주었다.[76]

이 전쟁은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욤프와 엑조세라는 단어가 영국 속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군사 정부의 영어 음악 방송 금지로 인해 지역 록 음악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297][298]

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이 사우스조지아 섬에 상륙했고, 4월 1일에는 포클랜드 제도 침공이 이루어졌다. 영국군은 반격을 위해 부대를 파견했고, 격렬한 해공전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과 항공 폭탄으로 영국 함선을 공격했지만, 영국 공군의 장거리 폭격 (블랙 벅 작전)으로 인해 항공 우세를 잃었다. 아르헨티나 해군 역시 주력함 헤네랄 벨그라노가 격침되면서 소극적인 현존 함대주의 전략으로 전환했다.

영국군은 미국의 정찰 위성 정보 지원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국가, 유럽 공동체 (EC) 가맹국, 칠레의 지원을 받아 정보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4월 25일에는 파라켓 작전을 통해 사우스조지아 섬을 탈환했고, 6월 14일에는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면서 전투가 종결되었다.

양국의 국교1990년에 재개되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301]

포클랜드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해공전을 동반한 근대화된 군대 간의 전쟁이었다. 양국 군대는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 서방 국가의 병기 체계를 다수 사용했기 때문에, 동일 병기를 사용한 군대 간의 전투라는 특징도 있었다.

6. 1. 아르헨티나의 정권 붕괴

부에노스 아이레스 산 마르틴 광장에 있는 ''모누멘토 아 로스 카이도스 엔 말비나스''(Monumento a los Caídos en Malvinas, "포클랜드 전몰자 기념비")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전쟁 직후,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군사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308]

6월 14일 항복 문서 조인[301] 이후, 다음 날인 15일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은 "전투 종결 선언"을 발표했지만, 패전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군사 정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15일 낮부터 밤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갈티에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폭동이 일어났고, 갈티에리에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긴 로베르토 에두아르도 비올라를 비롯한 군 내부에서도 책임 추궁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구심력을 잃었다. 결국 17일에는 대통령에서 해임되었고, 18일에는 육군 사령관 자리도 잃었다. 비교적 전과를 올린 공군 총사령관 바실리오 라미도조 준장도 8월 17일에 퇴임했으며, 해군 총사령관 아나야 제독은 전쟁에서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위를 유지했으나, 10월 1일부로 사임했다.

갈티에리 대통령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패전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 및 육군 총사령관에서 해임되어 실각했다. 후임에는 퇴역 육군 중장 레이날도 비뇨네가 취임했지만, 전쟁 초기 군과 페론주의자가 거국 일치 하에 화해하며 "해적 영국", "갈티에리 만세"를 연호하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패전으로 인해 반군 감정을 높여 전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그 결과, 곧 급진당의 라울 알폰신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민정 이관이 완료되었다. 갈티에리는 "총살에 해당한다"라고까지 말해졌지만,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고, 1990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아르헨티나 군 사령관으로 "더러운 전쟁"을 지도하여 많은 시민을 비밀리에 살해한 마리오 메넨데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므로 자살은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항복한 1만 명 이상의 아르헨티나 군 병사는 우루과이를 경유하여 강제 송환되었다.

이 분쟁으로 아르헨티나는 국제적인 평가가 크게 떨어졌고, 신뢰 회복은 문민 정부의 과제가 되었다. 문민 정부 하에서 20세기 초부터 계속되었던 칠레 및 브라질과의 군사 대립도 급속히 수그러졌다. 한편, 군은 정치력을 잃고 대폭적인 인원 감축을 겪었다. 개전 전 15만 5천 명 정도였던 아르헨티나군은 2000년에는 7만 1천 명으로 절반 이하로 축소되었다.

6. 2. 영국의 정치적 변화

마거릿 대처 수상의 보수당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 승리로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전쟁 전 여론 조사에서 SDP-자유당 연합에 뒤처졌던 보수당은 전쟁 이후 큰 차이로 선두를 되찾았고, 이듬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253]

6. 3. 포클랜드 제도의 변화

1983년 포클랜드 제도 주민들은 완전한 영국 시민권을 회복했다. 1985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어 섬 주민들에게 권한을 분권화하는 자치 정부를 장려했다.[254] 2013년 포클랜드 제도 주권 국민 투표에서 유권자의 99.8%가 섬이 영국 영토로 남는 것에 찬성했고, 투표율은 92%였다.[254]

6. 4. 군사적 교훈

포클랜드 전쟁은 현대전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군사적 교훈을 남겼다.

  • 대함 미사일과 잠수함의 위협: 아르헨티나 공군은 엑조세 대함 미사일로 영국 해군 함정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321] 특히 HMS 셰필드 격침은 현대 해전에서 대함 미사일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321] 또한, 아르헨티나 해군의 209급 잠수함 산 루이스는 영국 함대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다.[320]
  • 장거리 전력 투사의 어려움: 영국군은 포클랜드 제도까지 먼 거리에 전력을 투사해야 했다.[75] 이는 공중 급유 등 복잡한 군수 지원을 필요로 했다.[75]
  • 전술 항공력의 중요성: 영국 해군의 시 해리어 전투기는 제공권 장악과 지상 공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전쟁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259]
  • 지상군의 역할: 지상 전투는 영국군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특히 아르헨티나군이 사용한 브라우닝 M2 중기관총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 부재는 어려움을 가중시켰다.[310]


이러한 교훈은 대한민국 국군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북한의 비대칭 전력 위협에 대비하여 잠수함 및 대잠 전력 강화, 그리고 공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7.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포클랜드 전쟁은 냉전 시기 서방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이자, 영토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해상 및 공중전이 벌어진, 서방 국가의 무기 체계를 갖춘 근대화된 군대 간의 전투였다. 양측 모두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의 무기 체계를 사용했고, 일부는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과 중국 간의 센카쿠 열도 문제와 관련하여 양국 모두 포클랜드 전쟁을 선행 사례로 연구하고 있다.

7. 1. 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

포클랜드 전쟁은 영토 분쟁이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82년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제도)를 침공했지만, 영국은 즉각적인 군사 대응을 통해 섬을 탈환했다.

이 분쟁의 기원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의 발견 이후, 프랑스, 영국, 스페인이 차례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1816년 아르헨티나가 독립하면서 스페인으로부터 영유권을 계승했다고 주장했지만, 1833년 영국이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실효 지배를 확립했다.[303]

196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는 국내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속에서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포클랜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1965년 국제 연합 총회 결의 제2065호에 따라 양국 간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영국은 섬 주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아르헨티나는 주권 이양을 요구하며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301]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사우스조지아 섬 상륙을 계기로 포클랜드 침공을 감행했다. 이는 영국의 반격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영국은 즉시 기동 부대를 파견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상 및 공중전이 벌어졌다. 결국 영국이 승리했고,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붕괴했다.

이후 양국은 외교 관계를 회복했지만, 영유권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아르헨티나는 지속적으로 영유권 협상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의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국제법에 기반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7. 2. 국제 협력의 중요성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은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110] 특히 미국은 영국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표명했으며, 정찰 위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등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300]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회원국들과 유럽 공동체(EC) 가맹국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대립 관계에 있던 칠레도 영국을 지원하여 정보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일본과의 역사 문제와는 별개로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7. 3. 자주 국방의 필요성

포클랜드 전쟁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의 사례는 더욱 의미가 깊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영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국 영토를 방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한국이 북한의 기습 공격이나 도발에 대비하여 강력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 독자적인 작전 수행 능력 강화: 한국은 북한의 어떠한 군사적 위협에도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첨단 무기 체계 도입, 군사 훈련 강화,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 향상 등이 필요하다.
  • 비대칭 전력 대응 능력 강화: 북한은 핵무기, 미사일, 특수부대 등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비대칭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 굳건한 동맹 유지: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것은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결론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은 한국에게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한국은 이 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북한의 어떠한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을 건설해야 한다.

8. 현대에 미치는 영향

포클랜드 전쟁은 종전 직후부터 현재까지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이 전쟁을 "두 대머리 남자가 빗을 놓고 싸우는 것"이라고 묘사했다.[297] ''욤프''(yomp)와 ''엑조세''(Exocet)라는 단어는 전쟁의 결과로 영국 속어로 들어갔다. 포클랜드 전쟁은 연극, 영화, TV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고 음악가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군사 정부가 영어 음악 방송을 금지하면서, 찰리 가르시아, 루이스 알베르토 스피네타 등 지역 록 음악가들이 부상했다.[298]

1986 FIFA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디에고 마라도나 등의 활약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리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패배의 굴욕을 다소나마 씻을 수 있었다. (1986 FIFA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참조)

1989년 10월,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적대 관계 종료를 선언했고, 1990년 2월 5일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양국은 여전히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전후, 영국은 전사한 아르헨티나 병사의 유골 반환을 제안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섬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포클랜드의 다윈 묘지에는 아르헨티나 병사 묘 237기가 있으며, 이 중 123기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2016년 12월, 양국 정부는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통해 유골 발굴과 DNA 지문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에 합의했지만, 아르헨티나 내에서는 유골 반환에 대한 반대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8. 1.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군사적 접근

중국은 쿠데타를 일으킨 비델라의 중국 방문을 받아들이는 등,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몇 안 되는 공산주의 국가였으며, 국제 연합 총회 등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지지했다.[322] 1982년 9월 영국령 홍콩을 둘러싼 협상에서,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감을 얻은 마거릿 대처 총리에게 덩샤오핑은 "홍콩은 포클랜드가 아니고, 중국은 아르헨티나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대응하여 홍콩 반환이 결정되었다.[323]

2010년 7월, 중국은 같은 해 4월에 발생한 외교 위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324] 2011년 12월과 2012년 6월에도 중국은 아르헨티나를 지지했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336]

2012년 7월, 아르헨티나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의 주력 전투기로 개발 중인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젠-20 구매를 언급했다.[336] 또한 아르헨티나는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사이의 갈등에서 중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336]

2015년 2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056형 호위함을 구매해 '말비나스급'으로 명명하는 계획을 발표했고,[325][326] FC-1 전투기와 VN-1 보병전투차 등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327][328][329] 같은 시기, 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승인된 파타고니아 네우켄 주에 건설된 인공위성 추적 기지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관할하에 놓였으며,[330] 비밀 조항을 포함한 50년 계약으로 부지를 임대하고 있어 중국에 대한 주권 양도 및 중국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우려를 야당 등이 제기하며 논란이 되었다.[331][332][333] 미국에서는 이 기지가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할 경우 위성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을 제기했다.[334] 이러한 합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후임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권에서 수정 또는 중단되었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의 목적이 제2차 포클랜드 전쟁 발발 시 아르헨티나를 지원하는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335]

영국 측 보고서는 이러한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협력 관계를 배경으로 "영국의 국방 예산 삭감으로 인해 포클랜드 방어가 약화되어, 중국으로부터 군사적 및 재정적 지원을 받은 아르헨티나군에 빼앗길 경우 탈환은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했다.[336]

8. 2.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

포클랜드 전쟁은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일본에게도 영토 분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특히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은 포클랜드 제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와는 별개로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고,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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